애들이 태어난 뒤로 처음 있는 늦은 퇴근이었다. 필립 혼자 둘을 데리고 어디에 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집에 있으라고는 했어도 일하는 내내 마음이 붕 떠 있었다. 애들이 얌전한 축에 속하기는 해도 어디까지나 아기였다. 하나에게 신경이 쏠리면 다른 하나가 어디로 가는지 안 보였다. 혹시나 무슨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지 하는 기우도 조금 있었다.
차를 집 앞에 대고 내리니 거실 불은 켜져 있었다. 좀 늦은 시간인데도 잠들지 못한 모양이었다. 애들을 돌보다 그랬으리라. 안쓰러운 마음이 앞서 디어뮈드는 더욱 서둘렀다. 가방만 먼저 꺼내서 어깨에 두르자마자 차를 단속하고 집 도어락을 두들겼다. 마음이 급하니 손이 미끄러져 번호를 한 번 틀렸고 두 번째에는 침착하게 하나씩 눌러 문이 열렸다. 열리자마자 보인 것은 현관까지 기어 나온 핀이었다.
“핀?!”
“바아.”
“왜 여기까지 나왔어. 필 아빠랑 레이는?”
“바!”
무어라 대답하는 핀을 안아 올리고 디어뮈드는 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. 거실에 넓게 펴놓은 놀이 매트 안에서 필립은 앉은 채 자고 있었고 레이는 막 매트를 탈출해 방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. 디어뮈드는 레이를 잡아 핀 옆으로 안아 들었다. 양쪽 팔이 아주 묵직했다.
“바, 바아.”
“누우.”
“우리 이쁜이들. 이제 그만 잘 시간이야.”
레이는 졸린 기색이 역력했으나 핀은 아니었다. 디어뮈드는 유아 침대에 레이 먼저 눕히고 모빌을 켰다. 느리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식들을 보며 레이는 금세 잠들었다. 다음은 핀 차례였다. 핀은 누워서도 ‘바아’ 하는 소릴 내며 디어뮈드를 불러댔다. 필립을 닮아서 그러는지 핀은 잘 잠들지 못했다.
“아빠가 자장가 불러줄까, 핀?”
“바!”
“어이구, 그래그래. 어디 보자, 어느 걸 불러줄까?”
선곡은 역시 아일랜드식 자장가였다. 필립에게 먹히는 그 곡은 핀에게도 곧장 효과가 드러났다. 핀은 디어뮈드의 손가락을 잡은 채 하품을 하다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. 이제 남은 건 필립뿐이었다. 그 소리 속에서도 필립은 자고 있었다. 기절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.
“필.”
부르는 것만으론 이 잠자는 왕자의 꿈을 깰 수 없는 듯 보였다. 디어뮈드는 굳이 깨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냉큼 필립을 안아 들었다. 힘없는 몸은 묵직했으나 늘 들어왔던 무게보다는 가벼웠다.
“…루우?”
“쉬이. 깨지 말고.”
살풋 잠이 깨려 드는 걸 재우고 애들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, 발소리도 안 내고 걸어 침대로 가니 이불은 정돈도 안 되어있었다. 종일 대체 얼마나 바빴길래. 역시 혼자 보게 하고 나가는 건 할 짓이 못됐다.
“루….”
“많이 힘들었어?”
“애들이….”
“이제 푹 자. 내가 재워놨어.”
“당신도…. 얼른 씻고….”
말이 채 끝을 못 보고 끊겼다. 더 대화를 시도해봤자 나오는 말들은 혈중 수면 농도가 짙어 알아듣지 못할 게 뻔했다. 디어뮈드는 속옷과 잠옷을 챙겨 욕실로 향했다.
씻고 나오니 필립은 들어갈 때의 자세 그대로 곤히 잠들어있었다. 잠꼬대도 잠투정도 없었다. 그러다가 디어뮈드가 옆자리로 들어가니 본능적으로 머리가 어깨 위로 올라왔다. 자는 도중에도 제 것임을 아는 모양이었다.
“쉬이. 좋은 꿈 꿔야지.”
“루우.”
“내일은 뭐 할지 꿈에서 생각해둬, 여보.”
칭얼거리며 품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멎었다. 깊은 잠속으로 빠져든 필립을 안고 디어뮈드도 곧 눈을 붙였다.